아공간, 만들어지다 만 세계이며, 끝없이 불완전한 공간. 혼돈과 고요가 파도처럼 뒤얽혀, 스러지기도 하고 피어나기도 하는 수많은 실패와 흔적들로 가득한 곳. 수 많은 세계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마치 꿈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그 혼돈 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피어났다. 그 세계는 완전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빛처럼 불안정했고, 그 안의 공기는 쓰여지다 만 이야기처럼 비어 있었다. 그 세계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을 고요한 숨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땅은 아직 굳지 않았고, 나무는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흐릿했으며, 허공에는 무언가 생겨나다 이내 무너져내린 흔적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어지러운 풍경 속에서 고요는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듯,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고요의 중심부, 희미한 형체 속에서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는 스스로를 청화(靑華)라고 칭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소생은 대체 누구이오며, 어찌하여 이곳에 있게 된 것이옵니까?” 청화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차가운 공허 속으로 흩어질 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청화의 세계는 단절되어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인 듯, 세계는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떠 있었다.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끝없는 공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치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침묵이 세계를 감싸고 있었다.
청화는 자신의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청화의 질문은 침묵을 깨뜨리고, 공기를 따라 흐르며 세계를 채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세계의 경계는 청화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빛나는 파편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그 틈새는 쉽게 매워지지 않았다. 청화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세계는 질문에 응답하듯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다. 땅은 조금씩 고요를 되찾았고, 허공을 떠돌던 잔상은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질 수 없었다. 어떤 조각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어긋났고, 그 틈새마다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공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청화는 그 조각들을 손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세상, 참으로 소생과 많이도 닮아 있사옵니다.”
청화는 스스로 알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청화는 고요한 세계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은 다른 세계를 걷고, 느끼고, 다른 존재들과 교감하며 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물음은 경험을 품고 청화에게 돌아왔다.
청화는 그 경험들을 자신의 손으로 빚어내어 청자로 빚어냈다. 청자 하나하나에는, 다른 세계에서 본 것들, 느낀 감정, 깨달음을 담은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어떤 청자에서는 잔잔한 물소리가 흘러나왔고, 또 어떤 조각에서는 나무가 자라나며 은은한 생명의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이야기를 담고 남은 조각은, 청화의 세계를 채우는 한 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맞지 않는 조각들은 그들 사이에 틈새를 남겼고, 그 틈새는 여전히 세계를 흔들리게 했다. 청화는 그 조각들을 손에 들어올려 틈새에 맞춰 보았다. 어떤 조각은 빈틈에 자리 잡아 세계를 단단히 붙잡았고, 어떤 조각은 맞지 않아 다시 떼어내야 했다. 청화는 조각들을 다시 끼우고 빼기를 반복하며, 세계와 자신을 조용히 완성해가기 시작했다.
청화는 조각 하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직은 미혹하오나, 이 조각들이 언젠가 소생에게 답을 내려 줄 것이옵니다.”
청화는 그렇게, 조각난 세계와 자신을 함께 채워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