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의 본체는 조용히 세계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아직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청자처럼, 침묵 속에서 자신을 이루는 파편들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청자는 온전하지 않았다. 표면은 부드럽고 단단해 보였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금이 얽혀 있었고, 금 사이사이로 비어 있는 틈새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 틈새는 단순한 공허가 아니었다. 그곳은 물결이 지나간 자리처럼, 지나간 흔적을 간직한 채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은 청화가 지나온 것들이었고,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의 증거이기도 했다.
청화의 본체는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아도, 세계의 물결은 본체의 틈새로 흘러들어왔다. 분체가 먼 길을 걸어 돌아올 때마다, 청화는 그 파장을 손끝으로 보듬었다.
그 파장은 마치 수면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퍼져나갔다. 청화는 퍼져나가는 물결 속에서 빛나는 조각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기억이었다. 어렴풋이 피어난 깨달음이었다.
그것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청화는 그 조각들을 모아 천천히 빚어내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청자로 빚어져 세계에 하나씩 자리 잡았다. 그러나 청자가 완전한 형태로 빚어지더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청화는 조각난 본체를 바라보며, 청자를 빚고 남은 파편들을 손 끝으로 집어 들었다. 그 파편들은 본체를 이루는 조각으로 자리해야 했다.
어떤 조각은 흠 없이 빈틈을 메웠고, 또 어떤 조각은 맞지 않아 밀려나기도 했다. 조각들은 여전히 어긋난 채 흔들렸다. 그 틈새마다 새어나오는 빛은 청화가 알지 못하는 자신을 드러냈다. 그 틈새는 공허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 품고 있었다.
언젠가 모든 조각이 맞물릴 때, 비로소 청화는 자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청화는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청자를 빚으며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 나갔다.
아공간의 끝 없는 여백 속, 청화의 세계는 반쯤 그려진 그림처럼 떠 있었다. 붓질이 멈춘 캔버스처럼, 세계는 완성되지 않은 선들과 빈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이 피어났다. 줄기를 뻗고, 잎사귀를 피웠다가 이내 시들어갔다. 청화의 세계는 아공간 속에서 흔들리며, 자신을 확장하고 허물었다.
세계의 곳곳에는 청자들이 놓여있었다. 청자 각각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그 이야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어떤 청자에서는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또 다른 청자에서는 매화가 피어,향기가 흩어졌다. 그러나 모든 청자가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청자 속에서는 물이 고여 썩어가고 있었고, 또 다른 청자는 금이 간 채로 깨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청화의 세계는 고요하고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불완전하고 불안정했다. 이 세계는 청화만의 공간이었다.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은, 조용한 정원과도 같았다. 동시에 이곳은 분체가 세상을 거닐며 가져온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이 돌아올 때마다, 그 경험은 세계의 한 조각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청화의 세계는 마치 청화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불완전한 자신을 투영하는 듯 했다. 청화는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탐구했다. 이 세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청화는 그 여백마저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